약한 자의 믿음
170212 조원형목사님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로마서 4:18~25)
심리학자 폴 트리니에는 '모험으로 사는 인생'이란 글에서 살아가며 꿈도 꾸고 도전도 하지만 성공치 못하는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두가지 이유이다.
먼저, 자기의 경험 지식 학문에 안주하기 때문이다.
내 처지 형편에 그대로 머물고 싶어한다. 따라서 내 삶의 변화가 없다. TV 신문을 보고 새로운 이야기가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면 동요가 일어난다. 좋으면 불티나게 팔리고 나쁘면 재고로 쌓인다. 하지만 자신은 습관성으로 온전치 않기에 머물기만 한다.
둘째, 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디스커버리 다큐멘타리를 보면 이상적이 삶을 추구하며 도전하는 모습을 본다. 자신의 능력을 확대시키는 모습을 보며 우리 신아오 앞장서고 도전하는 신앙인으로 살아야 하는데 발전이 없다. 오히려 후퇴한다.
우리 삶의 변화가 없어서 건강조차 해치며 병원가면 움직이고 운동도 하라 한다. 모험하고 도전하는 인생 신앙이 필요하다. 도전 정신이 없으면 병들었거나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오래된 수령의 나무들도 새 가지가 나와야만 그 가지에 열매가 맺히고 생명이 유지된다. 사람이라서 후퇴했을지라도 다시금 도전해야 생명이 유지될 수 있다.
중세에 엘리마크스 수도사가 있다.
로마가 세계를 지배할 때 로마 사람이 즐겨찾는 운동이 검투사의 싸움이다. 여자는 노예로 삼고 남자는 건장한 노예중에서 검투사로 양성시킨다. 그리하여 로마 경기장에 발탁되어 많은 사람이 죽어간다. 옛날 검투사의 싸움에는 반드시 죽여야만 한다. 그걸 보는 마크스 수도사는 마음아파한다. 하루에도 몇명씩 죽어나간다. 하나님께 기도하니 경기장으로 가라는 마음이 생겨 경기장으로 나간다. 그곳에 가서 검투사의 경기를 중단시키라 말한다.
결국 어느 병사의 칼에 순교를 당하는데 로마 원로회에서 이를 재고하고 검투사 경기르 그만두기로 했다 한다. 내 힘으로는 감당할순 없지만 도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본문은 사도 바울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설명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도전정신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고 말한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사도 바울의 신학으로 설명한다.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구원받았다. 창세기 15:6에서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 말씀한다. 하박국 2:4에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말씀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고 사도 바울은 설명한다.
로마서 10:10에서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받는다. 그런데 입으로만 중얼하면 구원을 받겠는가. 달란트의 비유가 있다. 시작은 각자 다르다.그대로만 있으면 그 신앙마저 빼앗긴다. 장사라는 것이 도전이다. 본문의 교훈이 그러하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약할 때도 있다. 병들고 기력이 약해질 때도 있지만 생명을 잃을 정도는 아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회복하려 노력하는 것처럼 기도하고 힘쓰니 순종하여 회복한다. 모세 기드온의 믿음이 대단하지만 모세와 기드온은 하나님의 증표를 구했ㄷ. 그적을 보여주실 때에만 나섰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기적이 없어도 믿고 나아갔다.
우리의 신앙은 어떠한가. 증표 표적이 있어야만 나아가는가.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약한 자의 믿음이 그러하다. 죽은 자는 아니다.
고향을 떠나라 하실 때 아브라함은 증거 증표를 구하지 않고 말씀대로 순종했다. 하나님께서는 두가지 약속을 하셨다. 약속의 땅을 준다. 네 후손에게 준다는 것이다. 늙은 나이에 후손도 없다. 가산 정리하여 나아가면 어려움을 겪는 것이 뻔하다. 나아진다는 보장도 없이 말씀대로 순종하여 도전한다.
언제 하나님이 부르실지는 모르지만 년간의 계획을 세우며 산다.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한다. 죽은 자와 같은 몸이지만 후손을 주실 줄 믿고 나아갔다. 나중에 불신으로 여종 하갈을 택하기도 했지만 포기치는 않았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어려운 처지에서 부인도 했지만 부인치 않겠다 장담한 사람이다. 예수님을 저주까지 하고 낙심까지 했지만 다시 어부의 자리로 돌아갔지만 예수님은 찾아오신다. 그 마음 가운데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죽은 것은 아니었다. 믿음이 약하여 예수님을 부인하는 처지까지 되지만 그 양심은 살아있어 회복시켜주심을 본다.
자기 자식을 제물로 바칠 때에도 하룻길을 삼일걸려 갈 정도로 약한 마음이지만 순종은 했다.
그리하여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우리가 약할 때에도 낙심치 말고 기도하고 순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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