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요 산 자
170226 조원형목사님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글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로마서 6:6~11)
햇살 따뜻한 날 새끼 호랑이가 어미 호랑이와 장난을 치다가 질문을 한다.
"나 호랑이 맞아?" "왜?" "엄마는 큰소리치며 다니는데 나는 토끼가 뛰거나 새가 푸더덕거려도 겁이 난다." 하니 "네가 어려서 그렇다. 너가 나와 같이 배우며 자라나면 힘이 생긴다."고 격려한다. 새끼가 호랑이굴을 나가서 돌아오더니 또 묻는다. "내가 호랑이 맞아? 여우가 날 놀리고 새도 내 머리를 치며 이것도 호랑이냐? 놀리더라." 어미가 화는 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라." 한다. 얼마 후 더 멀리 갔다 오더니 상처가 나서 온다. "나 호랑이 맞아?" 다시 묻는다. "아직은 멀리 가지 말라 했잖아. 이 강아지만도 못한 놈아. 이 못난 놈아." 화를 참지 못하여 화를 내는 바람에 강아지가 되었다 한다.
정체 의식은 있으나 정체감이 떨어진다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이다. 겉으로는 뭔가 된 것 같은데 속은 아무 힘, 능력, 용기, 자신감도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신앙인이다. 의식은 그러하다.
그러나 나는 사명감, 뜨거운 열정, 사랑이 가득차 있는가. 현대인들은 외적인 조건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다. 알고 있는 지식은 백과사전과 다를 바 없는데 그 지식을 정리할 줄 모른다. 혼선을 가져오고 판단력을 잃어버린다. 옛날엔 못배웠어도 목적을 위해 노력했다.
영화 "백악관의 최후의 날"이 있다.
테러리스트가 백악관을 공격한다. 테러범을 향해 비밀요원들이 대처하여 싸운다. 백악관을 지키는데 어린아이가 비밀요원에게 묻는다. "아저씨 무서워요. 아저씨는 무섭지않나요?" 이에 "나도 무섭다. 그러나 백악관을 지켜야 하기에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싸우는거야." 대답한다.
자신의 사명감을 가지고 뜨거운 열정으로 어려움을 극복한다. 오늘을 살면서 어려움이 다가올 때 우습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두려움, 머뭇거림이 생긴다. 그러나 뜨거운 열정의 사명이 있기에 용기 결단으로 대처한다.
뜨거운 열정, 성경 본문의 말씀이다.
주님을 맞이하기 전에 죄에 대해서는 열정적이었는데 주님을 영접하고나서는 죄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었다고 말씀한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고나서는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이다. 대신 의, 하나님에 대해서는 부름받고 사명자이다. 마땅히 행할 도리에 대하여 주춤하면 죽은 자임을 말한다.
자신의 정체의식, 정체감을 얻기 위해 심리학자들이 말한다.
먼저, 정직하지 못해서 그러하다. 자신을 모르고 착각하기 때문에 도리를 상실했다. 계시록3:17에서 자신이 부요하다 자랑하지 말고 헐벗고 무익한 탓을 알아라. 내가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둘째, 순전해야 한다. 가감하거나 변명하지 말라. 내 의식에 빠져 착각에 빠지면 실패한다.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을 보니 특이하다.
백지 위에 점만 수없이 찍어놓았다. 그림 지식이 없어 그림 밑의 설명을 본다. "점선을 이으면 당신이 원하는 그림이 나옵니다." 연결해 보니 자신의 그림이 나오더라는 이야기이다. 내 자신을 낮추고 보아야만 그림 형체가 나오더란 말이다.
왜 사색하고 묵상하는가. 말씀 가운데 감추어진 내용이 많기에 깊은 내용을 발견하게 된다. 감추어진 무한한 신비를 발견하며 감사한다.
십자가를 보라. 본문 말씀이다.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의에 대하여는 산 자이다. 사명 도리에 대해서는 용기를 가지고 나서는 자이다.
새 학기가 되어 교수가 첫시간에 글을 쓴다.
"당신은 누구냐?" 영어로 써놓고 그 답을 써오라 한다. 예일대 졸업 교수이다. 예술제를 하는 대표감독이고 젊은 여자교수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가짜로 나타났다. 결국 사임하고 숨어버리는 존재가 되었지만 가짜가 판치는 세상이 되었다.
누제닉 노이로제가 현대인들의 의식이라 말하는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현대인들은 혼이 불안해 하는 세상으로서 겉만 자랐기에 자신감도 없다.
이에,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집중하지 말라.
사람은 감정 교류가 되어야 튼 사람이 될 수 있다. 관계 개선을 통하여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는다. 대인 관계에 정, 사랑, 감정의 교류가 필요하다. 내 감정이 메마르면 내 머리의 지식이 혼란을 가져온다. 말씀을 배우고 알지만 말씀이 실천되어야 한다.
둘째는, 사람에게 고통은 필연적이다.
고통, 실패, 아픔은 나를 깨우기 위한 유익한 것으로 받아들여라. 병원에서 이 병상에 있는 기간이 헛된 기간이 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돌이켜보는 계기가 되어 더 성숙해지길 기도한다. 헛된 기간이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리하여 어려움을 겪을수록 더욱 강해진다.
본문 말씀이다.
신앙인이 의식만 가지고만 살 것이 아니라 힘을 가지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실천해야 산 신앙인이 된다. 무릎 사이에 머리를 묻고 기도하신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을 본다. 왜 땀방울이 핏방울 되도록 기도하셨나. 죄만 없으시지 약한 인간의 몸 그대로 입고 오셔서 불안하고 떨리는 예수님이셨다. 그 때문에 기도하시고 승리하셨다.
우리는 신앙인이지만 불신자와 마찬가지의 인간이다.
고통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처럼 나를 쳐서 복종시키고 의에 대해서는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자.
의에 대해 순종하며 실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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