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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조원형목사님

170326 관제로 드리는 기쁨

관제로 드리는 기쁨

 

170326                                                                     조원형목사님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는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빌립보서 2:15~18)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다이빙 8종목중 6종목을 중국이 휩쓴다.

동양인이 체구가 작아서 다이빙에는 형편없는 실력이며 우리나라는 비인기 종목이지만 놀랍다. 1924년 LA올림픽에서 저우지웅 중국선수가 금메달을 땄다. 그 소녀에게 질문한다. 어떻게 했기에 땄느냐. 이에 대한 대답이다.

어렸을 때 100M달리기를 좋아해서 나갔는데 결승점에 거의 다 가서 넘어져 등수에 들질 못했다. 그 때 어머니가 칭찬하면서 네가 제일 잘 했다. 아름답고 흡족하다고 말했다. 다이빙 경기에서도 모친이 응시하고 후원하며 뛰어내린 후에도 멋있고 행복하다 말한다. 어머니 때무네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한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멘토이다.

내 영향력 이상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 실패와 성공, 지루하거나 낙담될 때 누구를 주시하는가.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선교사로 성공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성도들의 헌신의 열매라 말한다.

현대인들이 원하는 것은 성공인가. 그 성공이 행복의 목표인가. 진정한 삶의 감동과 행복은 무엇인가. 내적인 감격과 감동을 위해 수도를 해도 성공하는 삶인가. 내적 만족만도 아니다. 육신의 몸을 가졌기 때문이다. 철학자의 논의에서 소크라테스의 말이다.

먼저, 생리적 욕구가 만족되었을 때 행복하다.

배부르고 물 마실 때, 무엇을 원했는데 얻었을 때이다.

둘째는, 정신적 욕구의 만족이 있다.

무얼 원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신앙인들은 또 하나의 행복이 있다. 신앙을 통해서, 하나님을 통해서이다.  저우지웅이 모친을 통해서 얻는 후워처럼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십자가이다. 내 삶이 고달파도 십자가를 바라보며 위로를 얻고 행복을 얻는다. 신앙인들의 은혜와 축복이다.

 

현대인들의 행복 조건이다.

먼저, 얻는 행복이다. 없다가 있을 때, 잃었다가 찾았을 때이다.

둘째, 성취감의 행복이다. 마음 고생하며 노력하여 이루었을 때이다.

세째, 만드는 기쁨이다. 살아가며 계획을 세울 대의 행복도 있다. 살아있는 이유, 느낌도 발견한다.

네째, 베푸는 기쁨이다. 베푸는 행복이 받을 때보다 더 크다.

다섯째, 지켜보는 행복이다. 행복의 극치를 맛본 삶이 세례 요한이다. 내 기쁨보다도 예수님을 보며 더 기뻐한다. 자식이 자식을 낳았을 때 더 행복하다.

무디 목사가 스코틀랜드에서 마지막 날 "용서와 사랑" 설교중에 여자 청년이 "나같은 죄인도 하나님이 받아주십니까" 묻는다. 무디와 같은 사역을 하는 헤밀튼이 감동받아 214장 찬송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찬양을 만든다.

 

사도 바울이 받은 은혜에 감사한다.

목회자라서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한 것이 아니다. 외적으로는 체구도 작고 코는 높은데 얼굴이 작아 이상하ㅔ 보였고 머리카락도 덤성한 괴물같은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군중앞에서 내세울만한 것은 없지만 유대인에게 인정받는 것은 공회원이었다.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후에는 공회원 자리도 잃었다.  외적으로는 여건이 안된 사도 바울이 내적으로는 감격한다. 내적인 행복만큼은 모두가 동일하게 누리길 바란다고 말한다.

당시 삳 바울은 감옥에 갇혔다. 그 속에서도 빌립보 교회에게 위로의 편지를 쓴다. 거꾸로 된 입장이다. 사람의 행복이란 신앙인의 모습에서 새로이 본다.

사도 바울의 기쁨으 혼자만의 행복이 아니다. 성숙한 사람은 행복을 나눌 줄 안다. 그 행복은 하나님과소통함으로 얻은 것이다. 세상의 헛된 것은 내가 노력하고 수고했는데 이루지 못한 허탈함이다.

그런데 빌립보 교회는 열매를 먼저 거두는 교회라 칭찬한다.

서아시아 동양인에게 서양의 마게도냐 사람이 나타나서 우리를 도우라 하여 가서 세운 교회가 빌립보 교회이다. 여러 교회중에서 또 다른 교회이다. 마게도냐 사람을 선교하는 사도 바울을 집중적으로 도운 교회이다. 사도 바울을 많이 걱정한 교회이다. 옛날 감옥은 먹고 입고 병들 때 약을 그 가족이 제공하던 때였다. 사도 바울이 핍절할 때 얻어서 기쁜 것도 있지만 남에게 베풀 수 있는 교회로 성숙했음을 더 기뻐한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게 쓴 편지를 보며 감동 감격하는 것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감사한다고 한다.

관제는 양을 잡아서 제물로 드리는 제사이다. 그 죄를 양에게 전가시켜서 잡아서 태워드리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한 제물이 될지라도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말한다.

마태복음 26장에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말씀하실 때 제자들은 걱정만 한다. 그 때 마리아가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는다. 베다니촌의 마리아이다. 예수님의 자예를 위해서도 기쁘지만 이러한 사람이 있음을 더 기뻐했을 것이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는가"를 쓴 스펜스 존슨이 그 다음에 쓴 책이 "멘토"이다. 누구의 후원 영향을 받았는가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러시아 옐친이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었다. 그는 폴란드의 바웬샤를 보았다. 바웬샤는 마틴 루터 킹목사의 글을 읽었다. 마틴 루터는 흑인 하나가 백인들로부터 인종차별을 받았는데도 의연히 대처하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는 누구를 보고 은혜를 받는가.

우리의 멘토는 예수님이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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