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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주승중목사님

171210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신앙과 선택의 신비 5)


171210                                                  주승중목사님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중의 하나와도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룻기 2:8~16)


서울 마천동에 있는 교회 장로님 이야기이다.

딸이 수능후에 아르바이트오 PC방에 다닌다. 마땅찮아 했으나 형편이 어려워 3개월가량 일했다. PC방 사장이 3달치를 한꺼번에 주겠다고 하였으나 3개월후에 사장이 돌변했다. 근무 태도 등을 문제삼아 못주겠다 한다. 아버지가 확인하려 가보려고 한다. 아버지가 다녀온 후 PC사장이 급여를 주겠다 한다. 사장에게 무슨 말을 했느냐 물으니 기 안죽게 해달라는 부탁외에 한 말이 없다 한다. 4년후 졸업하고 예전 사장에게 가본다. 그 사장이 내일 다시 오라하여 가보니 봉투를 내주며 4년전 일을 말한다. 당시 빚으로 인해 줄 형편도 안되었다. 부친이 와서 둘러보더니 힘든 것 안다 전달만 해달라 해서 주었다 한다. 첫번째 사회 생활에서 기죽는 것이 싫다고 했다 한다. 이 딸이 돌아서면서 울었다. 당시 첫 돈을 자신만 위해서 썼다. 다시 아버지 내복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간다.


본문에서 이방여인 룻이 보아스를 통해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을 말씀한다.

모압소녀가 룻이라는 사실을 보아스는 알았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친족으로서 가까운 유력자가 보아스였다. 그러므로 자세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내게 분명히 알려졌다고 말한다. 룻이 희생적인 사랑(헤세드)을 깨닫는다. 보아스의 일방적인 사랑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본다. 그 헤세드는 무엇인가.

먼저, 식량은 당연하다. 그보다 급한 것이 신분이다.

보아스가 룻에게 "내 딸아" 부른다. 내 종이 아닌 가족이라 칭한다. 식사 시간이 되어 가족의 식탁에 앉힌다.

두번째로, 헤세드 사랑은 신변을 보호해 준다. 

이방인이었기에 보호자 없는 과부였기에 해꼬지당할 수 있었다. 꾸짖지도 말고 책망치도 말라 명령한다. 당시 이삭줍는 행위는 추수끝난 후의 일이다. 그런데도 추수 중에도 이삭을 줍게 한다. 상식을 넘어서는 일이다.

세번째, 헤세드는 정신적 위로의 사랑이다.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셨다 말한다. 어찌하여 은혜를 베푸시는가 묻는 대답으로 네 이야기를 들었다, 하나님이 네게 보상주시기를 원한다고 대답한다. 고통과 눈물을 씻고 절망에서 희망을 주는 말이다. 홀로 된 여인이 홀로 된 시어머니를 섬긴다. 더구나 이방 여인이 홀로 시어머니의 고향에 온다. 외로운 삶을 알고 있다는 말보다도 더 이상의 위로의 말이 없다. 이에 당신의 은혜를 받기를 원한다고 룻은 말한다.

마지막으로, 은밀함의 사랑이다.

식사 후에 다시 종들에게 명하여 이삭을 흘려서 더 많이 줍게 한다. 곡식 단 사이에서 추수가 끝나기도 전에 단을 묶는 도중의 상태에서 곡식단에서 조금씩 뽑아 흘려라. 그냥 주면 될터인데 룻의 자존심을 위함이다.

룻도 한 때는 사랑받는 딸이요 여인이었다. 말이 이삭줍기이지 거지가 되어 식량을 구걸하러 나온 것이다. 그런데 보아스가 불쌍하게 보아 줬다면 룻은 비참함 그대로일 것이다. 은밀함 배려의 헤세드 사랑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베푸시는 방법이 은밀함에 있다.

우리에게도 주어진 하나님의 헤세드를 알아야 한다. 우리도 하나님의 딸,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통해서 그 사랑을 받았다. 이제는 하나님의 사족,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른다. 신분 회복의 헤세드이다.

지금도 보호하심의 은혜를 입고 있기에 이 자리에 앉아있다. 실체적으로 위협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곳에 앉아 예배드린다. 남전에 참여한 아들을 위한 어머니의 기도 모임이 있었다. 그 참호에 뛰어들어가면 폭사했을 것인데 참호로 뛰어드는 도중 무거운 손이 내 어깨를 눌러 살았노라 아들은 말한다.


보아스가 룻에게 정신적 헤세드를 주었듯이 말씀을 통해 사람을 통해 우리를 치유해 주신다.

내가 지금 당하는 시련과 고통을 아무도 모르겠는가.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신다. 데살로니가전서 1:3에서 역사와 수고와 인내를 끊임없이 기억하고 있다는 말씀이 있다. 왜 기억하시겠는가. 때가 되면 갚아주시겠다는 말씀이다.


보아스를 통한 룻에 대한 은혜가 오늘도 우리에게 임함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은혜를 입으며 사는 사람이다. 지금도 우리에게 은혜를 흘려주시고 계시다. 룻이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들어갔지만 이것이 우연이 아니다. 우리가 눈이 감겨 깨닫지 못하는 것이지 눈을 떠서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다.


내가 시련 고통당할 때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 무엇인가 불평하지만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역사로 우리는 이 자리에 앉아있다.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손길을 믿음으로 바라보자.

내 주여 내가 당신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말하는 룻의 고백처럼 우리도 고백하자.

내 딸아 이삭을 주으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라는 보아스의 말처럼 주의 날개 아래 보호받으러 나와서 결단코 다른 곳으로 떠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