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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주승중목사님

180211 (비전과 섭리의 사람 요셉 1)

비전과 섭리의 사람 요셉 1


180211                                                        주승중목사님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창세기 37:5)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세기 50:20)


오늘부터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대를 잇는 족장 요셉의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있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창세기 37장부터 50장까지 요셉에 관련된 말씀이다. 비전과 섭리의 사람 요셉이다. 요셉은 꿈과 용서 믿음 성실함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낸다. 요셉의 전 생애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꿈과 섭리이다. 요셉의 생애는 비전과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운데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요셉의 생애는 출생부터 17세까지 요셉의어린 시절이 창세기 30:24~37:2에 나온다. 아버지 야곱의 남다른 사랑을 받았던 요셉이다. 17세~30세까지 요셉의 고난의 시절이 나온다. 창세기 37:2~41:46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 속의 요셉이다. 30세에서 죽을 때까지 요셉의 번영의  시절이 창세기 41:46~50:26에 나온다.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된 이 때는 그가 형들에게 복수할 기회를 가졌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오히려 형들을 용서하고 도와준다.


아브라함 생애의 가장 중요한 단어가 믿음과 섭리라면 요셉의 생애에서는 꿈이다.

로마서 8:28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이 요셉의 생애를 하나님의 섭리로 이끄신 것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음을 본다.


요셉은 창세기 37:3에서 채색옷을 입혔다. 화려하게 치장되어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입는 옷이다. 야곱이 요셉에게 이런 옷을 입혔다는 것은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상속자로 여겼다는 것이니 형들이 시샘할 수 밖에 없었다. 신약성경에서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이 야곱의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우물이 있다. 요한복은 4:5에서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창세기 37:1~11에서 형들이 요셉을 미워했다는 말이 4번이나 나온다. 형들이 요셉을 죽이고 싶도록 미워했다. 창세기 37:4에서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말씀한다. 그런 상항속에 있는데 요셉은 자기가 군 꿈의 이야기를 자랑하듯이 이야기한다. 형들의 미움과 질투는 극에 달했다. 결국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렸다. 17세 요셉의 고난의 시작이다. 요셉의 고난이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애굽에서 바로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있었는데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요셉은 옥에 갇히게 된다. 그 모든 시련과 고난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이루는데 쓰이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


형들에 의해 구덩이에 버려졌고 구덩이에 버려졌기에 애굽으로 팔려갔고 애굽으로 팔려갔기에 모함으로 감옥에 갔고 감옥에 갔기에 감옥에서 바로의 술관원장을 만났고 술관원장의 꿈을 해석하고 바로의 꿈도 해석하여 결국 애굽의 총리가 되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구속사를 이루게 하셨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였다. 창세기 15:13~14에서 놀라운 구속의 약속을 말씀한다. 애굽이 400년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라.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하나님께서는야곱의 자손 요셉이 애굽의 종살이할 것을 말씀하셨다. 온 세상이 기근이 들었을 때 야곱의 아들들이 양식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왔다가 애굽의 총리된 요셉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가 그 속에 있었다. 형들의 미움을 받고 애굽으로 팔려가고 애굽에서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을 받아 옥에 갇히게 된 것은 당신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었다. 요셉이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기근에 양식을 구할 수 있었겠는가.


모든 것이 합력해서 하나님의 선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내가 잘못해서 고난받는 줄 알았는데 요셉의 종살이 타향살이 옥살이가 다 억울한 사건인줄 알았는데 400년만에 거기서 큰 민족을 이루고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고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슬픔 기쁨 성공 눈물 억울함도 다 주님의 섭리였다. '당신들이 나를 애굽에 팔았다고 해서 두려워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하신겁니다.' 요셉은 진정으로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형제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 보내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  이스라엘은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께 받은 새 이름이다.


창세기 50:19~21에서 야곱이 죽은 후엔 형들은 요셉이 보복할까 두려워했다. 오히려 그는 형들을 위로하면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하나님이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나를 온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거듭거듭 위로한다. 악조차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섭리이다.


'슬기로운 감방생활'이란 드라마를 잠깐 봤는데 거기에 나온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자신이 처한 상황만을 보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계속 다툼을 일으킨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비록 몸은 갇혀있어도 희망과 소망을 잃지 않고 동료 죄수들에게도 잘 대하여 결과적으로 억울함도 풀리고 출소도 빠른 것을 보았다. 창살 너머의 밝은 별을 바라보면서 그 주위를 돌아보면서 희망을 가졌다. 억울함의 감옥 분노의 창살에 갇혀있으면 결국은 본인만 힘들다.


오늘 본문에서 요셉은 두번이나 꿈을 꾸었다. 요셉과 형들이 들에서 곡식단을 묶고 있었는데 형들의 단이 요셉의 단에 절하는 꿈, 해와 달과 별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이었다. 부모들까지도 요셉에게 절하게 되는 상황의 꿈이었다. 요셉은 그 꿈의 의미를 몰랐다. 비슷한 꿈을 반복해서 꾸었다. 요셉이 비슷한 꿈을 두번이나 꾸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꿈을 계시하신 것이었다. 요셉이 하나님의 계시를 담은 꿈을 꾸었고 그 꿈을 마음에 품고 그 꿈이이루어지는걸 목격하고 경험했다. 비전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었다. 요셉은 비전의 사람이었다.


꿈과 비전은 다르다.

꿈은 우리가 뭔가 실현시키고 싶은 희망이나 소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기본권이 꿈이다. 요셉의 꿈을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요셉이 개인적으로 17살이 될 때까지 야망과 욕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주신 요셉의 꿈은 비전이었다. 비전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고 꿈은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다.

요셉의 꿈은 요셉이 원하고 생각한게 아닌 하나님이 주신 꿈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요셉을 통한 구원의 역사,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원대한 꿈이었다. 17세에 노예로 팔려가 22년뒤에 이루어졌다. 그 구원의 섭리를 깨달은 요셉이 형들에게 말한 것은 창세기 45:5, 7~8에서 말씀한다. "하나님이...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요셉은 하나님이, 하나님이, 하나님이 하셨다고 거듭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나를 이곳으로 보내셨다. 하나님이 친히 계획하고 이루셨다.'


내가 2012년 담임목사로 부임할 때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 내가 맘속에 기도하던 것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이 원하시면 나는 그 길로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이다.  교회에 부임할 때 꿈이 있었다. 성도의 생각을 먼저 묻고 요셉에게 주신 하나님의 비전을 묵상하면서 창립 70주년을 맞이한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 100주년을 준비하면서 우리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비전은 무엇인가. 2028년까지 어떻게 하면 더 잘 섬기고 우리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 드리는 교회가 될까. 어떻게 한국교회의 모범이 되고 주님이 이끄시게 하는지 기도하고자 한다.

7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비전은 무엇일까. 그 비전을 향해서 나아갈 때 주님께서 주신 그 비전을 붙잡고 한마음으로 나아가 30년뒤 100주년을 뒤돌아보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고 하나님이 다 이루셨습니다 고백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 요셉의 비전이 우리에게 우리 후손에게 넘쳐나기를 축복한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의 역사가 우리에게, 우리 교회에 임하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