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묵상하나이다
180520 조원형목사님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97~106)
구약시대부터 신약시대에 이르기까지 질문과 논란거리가 창세기 2:9의 선악과 문제라 한다.
왜 에덴동산 중앙에 먹으면 죽을 수 있는 선악과를 만들어 놓으셨나. 책임을 근본부터 하나님께 돌리며 하나님을 폭군으로 착각하게 한다. 선악과도 믿음으로 보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깨닫는 계기로 삼는다.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언약의 관계를 확실히 해 놓으셨다고 해석한다. 믿음이 작을 때 고통과 시련을 불편하고 원망하지만 믿음이 성숙하면 양육하고 연단의 과정으로 생각한다. 바다를 항해하며 바람을 순풍으로 이용하여 빠르게 이동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계처럼 만들지 않으셨다. 생명, 자유의지, 선택의 의지를 주셨고 그것이 동물, 자연의 세계와 다른 특권이다. 선택하며 의미, 보람을 터득하고 사랑과 행복을 주셨다. 두려움, 협박도 하나님 편에서 믿음을 지키게 한다.
사도 바울과 요한이 병을 고치고 말씀을 전하니 사람들이 따른다.
제사장들이 불러 협박한다. 이에 바울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과 너희말을 듣는 것중 어느 것이 옳으냐 되묻는다. 이 시대에도 협박과 시련이 있다. 이 시대의 자유 의지의 특권이다.
선악과를 먹으면 죽으리라 말씀한다.
즉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면 죽으리라는 것이다. 세상에 두려운 것도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 가장 두렵다. 믿음 순종 충성과 불신 거역 변명의 선택이다. 성경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 말씀에 얼마나 순종했느냐 또는 거역했느냐 의 기록이 이어져 내려온다.
가인은 마음의 분노로 거역한다. 롯은 부유해지며 세상 말에 귀를 기울이고 쫒아간다. 이스마엘은 신앙없는 모친의 말을 들었고 에서도 거역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며 따르려면 늘 사모하고 갈망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양식으로 삼아야 한다.
시편2:2의 묵상을 말한다. '종일 묵상하나이다'는 말씀이다.
어원은 사나운 맹수가 주린 상태에서 사냥하여 먹는 헝그리 정신을 말한다. 그만큼 배고픈 정신, 사모하는 정신을 말한다.
그리고, 십자가 정신이 있다. 생명의 정신은 십자가에서 배운다.
배고픈 정신과 생명의 정신이다.
성경의 말씀을 비유로 표현한다.
먼저, 베드로전서 2:2에서 도의 젖이란 말이 나온다.
말씀을 어머니 젖에 비유한다. 생명이며 음식이다.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를 말한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젖먹이는 그림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삶에 지치고 힘들 때에 말씀이 우리에게 양약이요, 생명이요 회복이 된다.
둘째는, 요한복음 4장의 생수이다.
지금은 땅의 생수도 요염되었다 한다. 물의 문제가 우리 신앙의 문제이다. 순수한 생수로 우리의 생명을 유지한다.커피를 마신만큼 물도 마셔야 몸속 수분이 유지된다. 말씀을 물로 비유한다. 바다에 표류하는 사람들이 목말라 죽는다. 오직 생수가 성경의 말씀이다.
세째는, 누가복음 22장의 생명의 떡이다.
밥이며 빵이다.우리의 양식이다. 우리의 양식이다.적당히 먹어야 건강을 유지한다.
네째는,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에 접목된 가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말씀이 진액이다.
커다란 수박이나 호박도 손가락 굵기의 가느다란 줄기를 통해서 커진다. 모든 열매가 그러하다. 요나가 박넝쿨 그늘에 있다가 줄기가 끊어져 마르게 되어 원망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가 주일에 말씀을 듣는 것도 진액을 수급받는 순간이다. 중요한 시간이다. 가늘지만 풍성한 삶이 된다.
다섯째는, 꿀이다.
103절에서 꿀맛같다고 한다. 꿀맛은 밥도 그렇고 물도 그렇고 주려야 꿀맛이 나온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야 꿀맛을 느낄 수 있다. 세상의 말로 표현하는 최상의 방법이다. 또한 꿀맛을 느끼려면 건강해야 한다. 갈망하고 준비하는 마음에 영혼이 건강해야 한다.
본문에서 기자는 묵상을 말씀한다. 짐승이 배고플 때 사냥하면 대부분 실패한다. 그러나 주리고 주려서 못견딜 처지가 되어야 성공한다. 사진 작가들이 그 과정을 찍으며 사냥의 성공을 짐작한다.
여섯째는, 성경은 등불이다. 105절의 말씀이다.
일곱째, 성경은 음성이다.
높은데서 위험하여 어른들도 뛰어내리지 못한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어미의 음성을 듣고 믿고 뛰어내린다. 엄마가 받아줌을 믿기 때문이다.
어느 대학 교수의 말이다.
상대와의 관계가 친하려면 하는 말을 잘 들으라, 그리고 말하지 않는 말을 들으라. 그리고 말하고자 하는 말을 들으라, 그래야 상대와의 관계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예수님도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하지만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기도한다. 하나님의 말씀하시지 않으신 말씀까지 듣는다.
우리도 그렇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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