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두 아들에 대한 야곱의 축복
(비전과 섭리의 사람 요셉 23)
180902 주승중목사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창세기 48:12~20)
피그말리온 효과는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 로제탈이 주장한 피그말리온이라는 조각가 이름에서 가져온 교육심리학 이론을 말한다.
조각가인 피그말리온이 아름다운 여인의 조각상을 만들어 자기가 만든 그 조각상과 사랑에 빠졌다. 어느 날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가 그 모습에 감동하여 여인조각상에 생명이 깃들게 한다. 이 이야기를 교육심리학에 연결하여 피그말리온 효과라 부르며 실지 샌프람시스코의 한 초등학교에서 실험을 했다. 무작위로 20%의 학생을 뽑아 '우리가 지능검사를 한 결과 이 아이들에게는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하고 아이들을 맡겼다.교사들이 그 아이들에게 관심과 칭찬과 격려를 했더니 아이들의 성적이 눈에 띄게 향상되고 학습태도도 좋아졌다. 실제로는 무작의로 선출된 아이들이었는데 교사의 지속적인 관심, 사랑과 관심과 격려와 칭찬과 축복의 말이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축복의 사람, 축복의 통로로 부름받은 사람들이다. 창세기 12:3에서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 말씀은 아브라함에게만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영적 자녀인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진 말씀이다.
베드로전서 3:8~9에서도 축복, 복을 빌라 말씀한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결국 우리는 우리의 받은 바 복과 은혜를 나누어주고 전하라고 부름받은 존재이다.
어제 아시안게임에서 우리 대표팀이 야구도 축구도 일본을 이겼다. 우리의 삶속에도 금은동메달이 넘치기를 축복한다.
지금까지 보아온대로 야곱은 23년만에 죽은 줄만 알았던 사랑하는 요셉과 만나 극적인 재회를 하였다. 요셉은 아버지의 임종이 가까왔다는 소식을 듣고 두 아들을 데리고 갔다. 이에 아버지 야곱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야곱의 무릎 사이에 세우고 입을 맞춘다. 무릎 사이에 세우는 것은 양자삼는다는 표현이다. 창세기 30:3에서 '내가 무릎 사이에 두리니...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 창세기 48:5에서 '내 것이다' 즉 양자 삼아서 아들삼겠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요셉의 두 아들을 무릎에 세웠다. 요셉을 장자로 축복하는 행동이다. 창세기 48:16에서 '야곱이 요셉을 축복하여...'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고 있다. 요셉이 장자로서의 복을 받고 있는 것이다. 신명기 말씀에서 야곱이 요셉을 축복하면서 요셉의 두 아들을 양자로 삼고 축복하는 것은 요셉을 장자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역대상 5:1~2에서도 말씀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드럽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서 족보에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되지 못하였느니라.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에게서 났으나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 성경은 분명히 이스라엘의 장자권이 요셉을 통해 에브라임에게 이어졌다고 말씀한다.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한 행위가 심상치 않았다. 행위 자체의 의미가 있다.
요셉은 장남 므낫세를 야곱의 오른편에 차남 에브라임을 왼편에 세운다. 오른손은 힘 능력 은혜로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한다. 요셉이 장남 므낫세를 오른손으로 축복받게 하려고 세웠으나 아버지 야곱은 양팔을 엇갈려 축복하였다. 창세기 48:14에서 '엇바꾸어 얹었더라' 말씀한다. 요셉이 당황하여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안돼요 그렇게는 아버지' 하고 말렸지만 야곱은 단호하게 요셉의 저지함을 뿌리친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자기는 지금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이 축복의 행위를 하는 것이라 고 말한다. 창세기 48:20에 기록되어있다. 차자인 에브라임에게 축복한 것이다.
야곱의 이런 행위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대한 철저한 순종을 의미한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잘 보이지 않으니 실수한 것으로 여겨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요셉이 아버지의 손을 옮기려 하지만 단호히 야곱이 거절한다. 48:18에서 '허락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되어 있다. 야곱의 행동이 즉흥적이거나 옿는 노쇠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실히 말했다. 창세기 48:19에서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 에브라임이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하나님의 뜻은 아우가 형보다 크게 되고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것이다. 히브리 성경에는 48:19에 웨올람이란 말이 나온다. '웨올람'은 '그러나 참으로(but truly)라는 뜻이다. 즉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러나 참으로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리라(But truly, his younger brother shall be greater than he.)' 창세기 48:20에서는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며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다. 동생이 형보다 더 큰 자가 될 것이라. 야곱의 말은 진실로 그렇게 될 것이라 하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라는 것이다.
창세기 48:11에서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자손까지 보게 하셨도다' 아들 요셉이 죽은 줄 알았던 야곱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의 역사로 말미암아 요셉의 얼굴을 보고 자식까지도 보게 된 것이다. '레오'라는 단어는 보다, 창세기 32:30의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다는 그 단어이다. 내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다,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가운데서 너를 보고 너의 자손까지 보게 되었다. 지금 내가 눈이 어두워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야곱은 나이들어 육의 눈은 어두워졌어도 영의 눈은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창세기 48:14에서 야곱의 두 손자를 축복할 때 팔을 엇바꾸어 얹었다. 엇바꾸다는 말은 신중하다, 지혜롭다는 뜻의 동사이다. 성경학자들은 이 말을 두가지 뜻으로 해석한다. 팔을 엇바꾸어 얹었다 또는 팔을 신중하게 얹었다. 야곱의 이 행동은 눈이 어두워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신중하게 생각하고 얹은 것이다.
창세기 25:3에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에서와 야곱이 태어날 때 에서가 야곱을 섬길 것을 ㅖ언하셨다. 아버지 이삭은 남자다운 기질을 가진 에서를 사랑하였다.그러나 하나님의 간섭으로 야곱을 축복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는 때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실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렸지만 야곱은 에브라임을 축복하였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에 의한 예이다. 성경을 보면 장자대신 다른 아들, 차자가 선택된 경우가 종종 나와 있다. 가인 대신 아벨이, 이스마엘 대신 이삭이, 아론 대신 모세가, 여덟 형제중 막내 다윗이 선택된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이런 예외적인 경우로 택하셨는지는 모르나 하나님께서 그의 주권적인 선택이고 섭리의 역사이다. 때로는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하더라도 결론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의해 에브라임을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내 생각과 우리가 원하는 것과 다르다고 해서 우리의 작은 능력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기쁨' 저서를 쓴 존 파이퍼목사는 '하나님만이 유일한 주권자이시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것밖엔 없다. 이사야 55:9에서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시편 77:19의 '주의 길은 바다에 있었고 주의 곧은 길이 큰 물에 있었으나 주의 발자취를 알 수 없었나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홍해 바다가 가로막혀 있을 때 하나님께서 열어놓으신 그 바닷길, 놀라운 구원의 길이었다. 로마서 11:33에서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말씀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짧은 이성과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노력하면 안된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과 섭리앞에서 그것이 결국은 나를 유익하게 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시스터즈 김기선 씨 부부의 이야기가 있다.
기다리던 아이가 이상이 있다. 김씨가 가수활동중에 출산한 딸 유선이가 돌이 지나도 걸음을 걷지 못했고 2년4개월만에 신생아 황달로 인한 뇌성마비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1973년 딸의 뒷바라지를 위해 활동을 중단하고 뇌성마비 아이엄마로의 삶이 시작되었다. 3년간 재활원 치료를 마치고 일반학교에 입학한 딸은 언어장애와 지체장애를 지녔지만 항상 씩씩한 모습을 잃지 않았고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해서 항상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하지만 우연히 본 딸의 일기장에는 죽고싶다는 말이 가득했고 뒤늦게 딸의 슬픔을 알게 된 김기선 역시 하늘을 원망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대학입시에서도 면접이라는 벽에 부딪혀 미국유학을 선택했고 마침내 유선씨는 2004년 보조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조지메이슨 대학 교수가 됐다. 또 지난해에는 최우수교수상까지 받았고 현재는 가정을 꾸려 두 아이의 엄마로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세상에 불가능은 없습니다. 늘 부모님께서 저한테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넌 할 수 있어 네가 할 수 없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단다.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해 주실거야. 네가 가진 장애나 불편함 역시도 하나님께서 네게 주신 축복이란다. 너는 반드시 잘 될거야. 너는 우리 가정의 축복이란다.' 이 부모님의 말씀,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저도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축복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정유선 교수의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책 중에 나오는 글입니다.
처음에 그 아이가 뇌성마비 증상이 일어났을 때 부모는 실망했겠죠. 뇌성마비 증세로 울거나 웃으면 얼굴 한켠이 찌그러졌고 그렇지만 유선의 부모는 여기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거다. 그렇게 하나님께 맡기고 아이에게 온맘과 정성을 다해 유선이를 양육하였다. 유선이가 자라면서 주위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놀릴 때마다 축복하고 격려하는 말을 해 주었다. 정유선 교수는 장애를 극복한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놀라운 역사를 베푸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본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역사는 우리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여전히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의 역사를 베풀어 협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이다. 야곱은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에 의해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했고 열두 지파가 생겨났다.
우리는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깨닫고 우리 삶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그 뜻에 순종할 때 우리 영의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가 임하게 될 것이다. 그 축복의 역사가 우리에 의해 이어지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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