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축복의 내용
(비전과 섭리의 사람 요셉 24)
180909 주승중목사님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창세기 48:15~16)
엊그제 우리 축구대표팀이 코스타리카와 친선경기에서 2대0으로 이겼다. 비록 친선경기였지만 이기니까 좋았다.
손흥민선수가 주장인데 손흥민선수는 유소년팀에서 축구를 배운게 아니라 아버지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아버지는 재능있는 선수였는데 부상으로 축구를 접고 형도 부상으로 축구선수가 되는걸 포기했다. 하면서도 아버지의 재능이 차남인 손흥민에게 이어진 것을 보았다.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이야기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적 뜻에 의해 차자인 에브라임에게 축복이 주어졌다. 이같이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복도 자격이나 조건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믿었기에 야곱은 에브라임에게 축복하였다.
야곱과 에서의 경우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로 야곱에게 축복이 주어졌다. 야곱이 형 에서보다 더 똑똑하고 지혜로운 것이 아니었다. 에서는 용맹하고 야곱은 빼앗는 자, 이기적인 성품이었다. 오히려 인간적으로 보면 형 에서가 야곱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을 택하셨다.
야곱은 요셉의 청을 물리치고 자신의 팔을 어긋나게 하여 즉 신중하게 하여서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였다. 창세기 48:19에서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오늘 이제 그 축복의 내용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며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나(야곱)의 하나님이란 표현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을 뜻한다. 출애굽기 3:6에서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즉 하나님이 모세에게 친히 당신을 그렇게 소개하셨다.
마태복음 22:31~32에서 예수님께서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표현하신다.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이는 하나님의 언약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매우 중요하고 의미있는 하나님에 대한 표현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세 족장을 통해 언약을 신실하게 이뤄가시는 하나님, 언약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언약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이름, 언약의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이다.
창세기12:2에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이것보다 더 큰 유산은 없다. 네 자체가 복의 뿌리다. 창세기 17:2, 4, 5에서도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말씀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이 복을 이삭에게도 똑같이 약속하신다.
창세기 26:3에서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너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너로 말미암아 온 세상이 복을 받을 것이며 복의 뿌리가 되게 하겠다는 말씀이다.
그 아들 야곱에게도 약속하신다.
창세기 28:13~14에서 '또 본즉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야곱에게도 약속하시고 야곱을 통해 12지파가 생겨나고 그 후손이 동서남북으로 퍼져나가게 하셨다.
한번 말씀하시면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고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한다는 축복, 이보다 더 귀한 유산은 없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에게 어떤 유산을 물려 주어야 하는가.
언약의 하나님 그 자체, 언약의 말씀, 축복의 말씀, 하나님을 전하고 믿음의 유산을 축복으로 물려주어야 한다. 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실 것이다. 기르신다. 풀을 뜯게 한다. 방목한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시다. 나의 목자가 되어주신 하나님이시다. 야곱의 하나님의 복으로 축복한다. 시편 23편에서 다윗도 고백하였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사야 40:11에서도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을 목자라고 고백하였다.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당신을 선한 목자로 표현하셨다. 야곱이 제일 먼저 하나님을 나의 목자라고 고백했다. 야곱은 평생 목자로 살면서 목자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 안다. 야곱은 바로를 만났을 때 130년의 고달픈 인생 여정을 살아왔음을 말했다.
양은 세심한 돌봄과 주의를 요구하는 연약한 가축이다. 힘이 없어 벌렁 뒤집어지면 스스로 일어나지 못한다. 겁이 많고 쉽게 도망간다. 목자는 언제나 양들을 주시하면서 살펴야 한다. 양들은 먹을 것을 고르는데 분별력이 없다. 독초를 먹지 않도록 좋은 목초지로 인도해야 한다. 맹수를 만나면 어떤 보호 수단도 없다. 방향 감각이 없어 길을 잘 잃고 제멋대로 가려는 못된 습성이 있다. 이사야53:6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우리는 다 양같아서 각기 제 갈길로 갔다'고 말했다. 창세기 31:38~40에서 야곱은 평생을 목자로 살면서 힘들게 양을 보살폈다.
38. 내가 이 이십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39.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40.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릎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야곱은 20년을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에도 눈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야곱은 목자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야곱은 바로 그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되시는 그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셨고 지금까지 돌봐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하나님께서 너희들과도 함께 하시고 돌봐주실 것이다.
헨리 나우엔의 이야기이다.
헨리 나우엔은 유명한 저술가이며 영성가였다. 어느 날 모두가다 부러워하는 하버드대 교수직을 사임하고 십년동안 한 장애인의 목자가 되어 그를 돌보다가 세상을 떠났다. 중증장애인이었던 청년 아담을 씻기고 아침식사를 시키는데 2시간이 걸렸다. 아담은 정신적으로도 심한 장애를 앓고 있어서 헨리 나우엔이 자기를 왜 돌봐주는지 몰랐다. 헨리 나우엔은 그 아이를 10년동안 매일 씻기고 먹이고 돌보아주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왜 이런 힘든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내가 여기 와서 이 젊은이를 돕는 것은...이 아담이라는 청년을 통해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고 어떻게 하면 사라ㅏㅇ할 수 있는가를 배울 수 있으며 또 영적으로 심한 장애를 앓고 있는 우리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사라아하고 계시는지도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헨리 나우엔의 말이다.
'영적으로 심한 장애를 안고 있는 우리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사랑하고 계시는지 깨닫는다'는 표현, 이 마지막 말이 참 의미가 있다. 헨리 나우엔의 이 대답을 통해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희생적인 사랑을 받고도 깨닫지 못하는 수많은 현대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주님의 사랑을 모르고 살아가는지...
선한 목자이신 우리 주님은 지금도 말씀하신다.
'나는 선한 목자다. 지금도 너희를 사랑하고 있단다.' 야곱은 자신의 손자들에게도 하나님의 복이 이어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선한 목자의 돌봄을 받은 우리도 자녀들에게 그 복이 이어지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환난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복이다. 16절에 나온다. 건지다는 표현은 '학고엘', 고엘은 기업을 무를 자, 친척이나 형제가 큰 빚을 지고 노예가 되려할 때 그 빚을 대신 갚아주고 기업을 무르는 것, 구원하는 자를 뜻한다. 바로 그 하나님의 복이 너희들과 함께 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사자 즉 하나님을 사자로 표현한다. 창세기 32:30에서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했던, 그 사자와 같은 말이다. 야곱은 그가 어려울 때마다 신실하게 보호하고 지켜주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그의 손자들과 함께 하기를 축복한다. 진정 바라고 축복하기는 오늘 아브라함의 후손된 우리들에게도 그 축복이 임하기를 바란다.
실패는 없다는 한국도자기 김동수 장로의 이야기이다.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다가 사채까지 쓰고 점점 더 악화되어 1970년에 빚이 350억이 넘었다. 직원들의 월급은 밀렸고 사채업자의 빚 독촉, 직원월급, 빚독촉...눈 뜨고 사는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잠이 들 때 이대로 눈뜨지 않기를 바랬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새벽에 말씀을 읽으려고 성경을 펼쳤는데 이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고린도후서 1:8~10 말씀이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이 말씀에 큰 충격을 받는다.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짐은 자신의 이야기였다. 이 말씀을 읽을 때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그 동안 의지했던 것이 나 자신이었음을 그는 깨달았다. 마음속에 위로와 소망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자신만 의지하고 내 경험을 의지했던 자신의 교만을 회개하고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다. 길을 가도 회의를 해도 눈물이 났다. 기적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의 역사와 각고의 노력 끝에 환난에서 일어나게 되었고 빚을 다 갚고 부채 0%가 되었다. 국내 최초로 국제인증 도자기회사, 세계에서 5번째 기업이 되었다. 한국도자기 김동수장로의 말이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무슨 일을 맡길 때 조금 시늉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안됩니다. 하나님께 무슨 일을 맡길 때는 온전히 다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에도 시늉만 하지 말고 목숨을 걸고 매달려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모든 환란과 고난으로부터 건져내시고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야곱을 환난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모든 것을 다 맡기자.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것이다.
야곱이 그의 손자들에게 물려준 것은 축복이었다.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그렇게 축복하고 계시다.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들인 우리도 이같은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갈라디아서 3: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갈라디아서 3: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을 통해 이어진 축복을
.우리에게도 유업으로 이을 자라는복을 똑같이 주셨고 주시고 계시고 앞으로도 그 복이 약속되고 보장되었다. 하나님은 우리로부터 우리 자녀들에게도 언약의 복이 이어지기를 원하신다. 이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시는 하나님의 복이 우리 가정과 우리 자녀들에게 전수되고 이어져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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