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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그 외 자료

180916 감사로 얻은 크고 놀라운 축복

감사로 얻은 크고 놀라운 축복


180916                                       박성원목사


나병 환자 열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17:11~19)


예수님이 사마리아촌을 지나가실 때 나병환자촌을 지나며 나병환자 10명을 만난다.

구원하소서 하는 요청에 예수님은 제사장에게 보여라 말씀하신다. 그 10명이 말씀을 믿고 제사장에게 가다가 치유된다.그런데 그 열명중 한사람만이 돌아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감사하는 자가 희귀하다.

열명이 깨끗함을 받았는데 감사를 표현하는 사람은 열명중에서 한사람밖에 없었다. 당시의 나병은 불치병 사망선고였다. 격리되었다. 당시의 사건은 지금의 암환자가 죽었다가 살아나는 기적이었다. 파렴치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열명중 아홉이 감사하지 않았다. 인간의 보편적 심성을 확인한다.


말세의 증상중 고통하는 때에 나타나는 것이 감사하지 않는 것이다. 죄인의 특성이며 인간의 본성이다. 죄인의 특성은 원망하고 분노한다. 성도들도 기도를 부탁하고는 기도 응답후 태도가 달라진다. 감사는 의도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감사하지 못함은 인간의 망각의 특성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깜박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잊어버리는 것이다.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고 베푼 것은 작은 것이라도 기억한다. 출애굽하며 만나와 메추라기도 주셨건만 마라의 쓴물에 다시또 원망하듯이 우리의 상황이 그러하다. 시편 103:2에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은택을 잊지 말라' 하신다.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찬송도 있다. 주께서 주신 복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감사하는 사람이 의외의 사람이다.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온 자가 없느냐' 섭섭함을 표현하신다. 선민된 유대인들은 다 어디 있느냐 작은 은혜를 받은 사마리아인만 돌아왔느냐는 것이다. 은혜를 많이 받은 이들은 잊어버리는데 감사하는 사람이 감사하고 불평하는 사람이 불평한다. 환경과 조건이 문제가 아니라 깨닫음으로 감사의 눈이 열린다. 나병 환자 아홉도 감사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행동하지 않았다.  표현하지 않았다.

집에서 인터넷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문제인 이유이다. 감사함으로 나와서 송축하는 것이 예배의 근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해야 한다.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반응하는 것이 예배이다.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건강의 문제이다. 사도 바울이 범사에 감사하라는 이유이다. 항상 감사하고 쉬지말고 감사하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의미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신앙생활은 감사의 생활이다.


돌아와서 감사했던 이 나병환자는 놀라운 구원의 선물을 받는다.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감사의 표현에 더 놀라운 축복을 받는다. 그 감사의 표현을 믿음으로 보신다. 아무 공로없고 자격없는 우리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큰 선물이며 축복이다. 때문에 끊임없이 감사해야 한다. 그 감사함으로 사탄의 결박이 모두 풀어진다.


돌아오는 추석은 감사의 절기이다. 그러나 현대는 열받는 절기가 되었다. 감사를 회복해야 한다. 노르웨이 속담에 '감사하는 마음에는 마귀가 씨를 뿌릴 수가 없다'고 한다. 자녀가 반항한다면 그 사랑하는 자녀가 있기 때문이고 내어야 할 세금이 있다면 그에 준하는 수입과 재산이 있기 때문이다. 설겆이거리가 많다면 그만큼 먹거리가 풍족했고 세탁물이 많다면 그만큼 입을 옷이 많다. 옷이 작아져서 낀다면 잘 먹고 잘 살았기 때문이고 알람시계가 나를 귀찮게 깨운다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헬렌 캘러의 마지막 소원이 있다. 마지막 죽기 전에 3일간 눈이 떠지기를 소원한다.

하루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보며 함께 산책하고 하루는 해 뜨는걸 보고 밤의 별을 본다. 또 하루는 출근하는 이를 보고 쇼핑하는 것이 소원이다.  우리의 평상시 일과가 누구에게는 평생의 소원이다.

우리의 약함과 부족함도 나의 존재 자체로 인함임을 감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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