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죽음과 믿음이 주는 교훈 2
(비전과 섭리의 사람 요셉 27)
181007 주승중목사님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창세기 50:22~26)
먼저 유튜브 동영상을 보자.
5억원짜리 벤틀리를 땅에 묻으며 장례식을 치르게 된 사연이다. 알고보니 사업가 치퀴노가 벌인 장기기증 독려 캠페인이었다.
치퀴노씨는 브라질의 부호였는데 차를 땅에 묻으며 정말 슬픈듯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왜 그 비싼 차를 그대로 땅에 묻는 것인가. 이에 치퀴노씨의 대답은 '자동차는 아까워하면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장기는 왜 그대로 땅에 묻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우리나라 돈으로 5억이나 되는 벤틀리차를 장례하는 퍼포먼스를 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장기기증에 대한 각성을 일으켰다.
지난 주부터 나누고 있는 요셉의 죽음과 입관에 대하여 특별하고 심오한 의미를 배우자.
빛과 생명의 창조로 시작된 창세기가 왜 죽음과 입관으로 끝나고 있는가. 왜 요셉은 그의 유골을 장례가 아닌 입관만을 하라고 한걸까. 요셉은 평생을 그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고 살았다. 그는 애굽에서 13년동안은 감옥살이 종살이를 하였지만 무려 80년동안 국무총리로 모든이가 부러워할만큼 부와 영화를 누리고 살았다. 그가 가나안땅에 산 것은 불과 17년이었다.
창세기 50장 앞부분을 보면 야곱의 아들들은 막벨라굴에 아버지 야곱을 장사한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요셉 자신은 장례를 치르지 말고 입관만 하라고 한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반드시 돌아가게 될 것을 굳게 믿음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약속의 말씀에 대한 요셉의 믿음과 소망이다. 약속의 말씀은 창세기 15:13~14에 나온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하나님께서 나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었다. 400년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노릇하지만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 요셉은 바로 이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말한다. 창세기 50:24~25의 말씀이다.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반드시"란 말이 이 말씀에 두번이나 있다. 강조형이다. 영어성경은 Surely란 단어가 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때가 되면 반드시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것이다. 요셉의 확신에 찬 이 말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있는 요셉의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 창세기 26:2~4의 말씀이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도 약속하신 말씀이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을 네게 이루겠다는 것이다. 땅을 주리라 후손을 주리라 복의 뿌리가 될 것임을 약속하셨다.
창세기 28:13~14에서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이삭의 아들야곱에게도 똑같이 약속이 주어졌다. 그러므로 증조부 아브라함, 조부 이삭, 아버지 야곱...이 세족장들에게 공통적으로 가나안땅을 그들과 그 후손에게 주리라 약속하셨다.
그 언약의 말씀을 믿고 "나를 여기 이 땅에 묻어서는 안되고 입관만 하고 그 약속이 성취되는 날에 내 유골을 메고 약속의 땅으로 올라가라"는 유언을 남긴 것이다.
시편 105:19에서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결국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성취되었다. 약속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소망은 400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렸다. 우리가 보기에는 더디고 느린 것 같아도 반드시 때가 되면 언약의 말씀을 이루실 줄 믿고 인내하고 기다려야 한다. 베드로후서 3:8~9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다는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때로는 하나님께서 약속을 너무 오랫동안 이루어주지 않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언약은 당신의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어주신다. 우리는 인내하는 가운데 그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소망을 내려놓지 말자.
샤르니 이야기이다.
샤르니는 나폴레옹에게 미움을 받고 감옥에 가게 되었다. 점점 가족들과 친구, 모든 사람들에게서 잊혀져가고 있었다. 그는 감옥의 벽에다 이렇게 글을 썼다. '이제 아무도 더이상 나를 돌보아주지 않는다!' 어느날 돌틈에서 이름모를 풀이 자라나는 것을 보고 자기가 먹을 물을 나눠주면서 잎사귀를 보고 희망을 품게 되었다. 거기에 꽃봉오리가 맺히더니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 그는 먼저 벽에다 썼던 글을 지우고 새로 썼다.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돌보고 계신다"라고...조세핀 왕비에게 그 이야기가 전해졌다. 감옥에서 꽃을 돌보는 이는 나쁜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황제에게 얘기해 마침내 석방된다. 감옥안에서도 들에 핀 백합화를 돌보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끝까지 붙잡아 마침내 풀려날 수 있었다. 이사야 55:11에서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요셉의 관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는, 보이는 말씀의 역할을 하였다. 도대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그 긴 400년동안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인내할 수 있었을까. 요셉은 분명히 할아버지 아버지에게서 약속의 말씀을 들었으니 믿음으로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와 함께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기다릴 수 있었나. 93년이나 살았던 애굽에 묻지 말고 입관만 해달라고 했던 요셉의 관, 거기에 답이 있다. 요셉의 관은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자손손 하나님의 말씀, 언약의 말씀을 그들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보이는 말씀의 역할을 하였다.
매장되지 않은 뼈들은 이스라엘에게 얼마나 큰 교훈이 되었을까. 애굽의 감독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힘들게 다뤄서 그들의 마음이 힘을 잃었을 때 옮겨질 것을 기다리고 있는 미이라 상자를 보는 것은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분명히 요셉은 우리가 여기에 항상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조만간 가나안으로 떠나게 될 것이라 믿었다. 조금만 더 참고 힘차게 버티자. 그저 조금만 더 있으면 될 것이다.' 또 어떤 자들은 번영하는 생활 형편에 만족해서 정착하려 하고 또 부추 마늘과 양파의 진수성찬을 먹는 것에 대한 유혹을 받으면 요셉의 관은 그들을 저지하는 도구가 되어 그들로 하여금 그 유골을 생각하고 분명히 우리는 여기에 항상 머물러 있늘 것이 아니라 말하게 했다. 그리고 백성들이 광야에서 행진하느라 힘들고 지치면 그들 가운데 지니고 있는 그 유골은 그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을 안식의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요셉의 확신에 찬 희망을 말해 주었다. 제임스 보이스 목사의 '창세기 강해'에서 말하고 있다.
요셉의 관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인내하게 했고 백성들이여기에 머물러서는 안되고 출애굽 사십년 세월에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할 때,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려고 할 때, 조금만 더 힘을 내라 약속의 땅에 곧 들어간다는 믿음과 소망을 갖게 했다. 요셉은 이를 위해서 다만 입관만 하라고 유언한 것이다.
가나안은 요셉이 17세 이후로 단한번도 잊지 않고 품은 본향이었다. 요셉의 이런 요구는 처음에 예로 든 부호 치퀴노의 퍼포먼스처럼 목적이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로 살면서 고생할 때 그들에게 요셉의 관은 보이는 말씀 역할을 했다. 요셉은 그들에게 애굽은 우리가 영원히 거할 곳이 아니라는 메세지를 주었다. 요셉의 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들었던 출애굽 여정 중에 용기와 인내의 메세지를 주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텐데 그 때 나의 유골을 메고 올라가라'
우리는 요셉의 이런 믿음과 확신이 이우러짐을 출애굽기 13:18~19에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우리가 시련 고난 낙망 가운데 있을 때 그것을 물리치고 일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요셉의 관 못지 않은 약속이 있다.
요한복음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는 예수님의 약속이 있다.
마태복음 28:20에서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이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
어거스틴은 성례전 세례와 성찬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총의 수단으로서 보이는 말씀이라 한다.
세례는 예수님의 보혈로 죄사함 받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증표이다.
성찬은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우리가 영생을 받았고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표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보이는 말씀이다. 이 모든 것 위에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은총의 수단, 그것은 바로 성경말씀이다.
요셉의 관은 반드시 너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언약의 말씀을 보여준다. 우리에게는 요셉의 관이라는 간접적 방법이 아니라 직접적인 방법이 전해졌는데 이것이 말씀이다. 성경을 통해서 직접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언제든지 받을 수 있다. 무릎꿇어 기도하는 가운데 언약의 말씀이 담겨있는 말씀을 펼치면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등불삼아 믿음으로 이겨내자.
백화점의 창시자 워너 메이커 이야기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먹고 살기 위해 열살 때부터 멱돌나르는 일을 하였다. 그는 성실하게 일했고 주일이면 주일학교 교사로 평생 봉사했다. 처음 벽돌 나르는 일을 해서 2달러 50센트 돈을 벌어 성경을 샀다. 그 다음 남성복 판매일을 성실히 했고 인정받고 소매상을 시작했고 워너메이커 백화점주가 되었다. YMCA 한국 건물도 워너메이커가 세웠다. 워너 메이커는 이런 간증을 한다. '나는 일생동안 투자를 많이 했다. 나는 물건을 사들여 다시 수천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러나 내가 투자했던 것 중 가장 성공적이었던 것은 내가 10살때 2달러 50센트로 성경을 산 것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한 가장 위대한 투자였다. 왜냐하면 이 성경이 오늘날 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성경 속에 있는 약속의 말씀을 그대로 따랐다.' 그는 성경 66권 아이디어로 백화점을 창안한 것이다. 기자회견 때 그는 투자하고 실패한 적이 없다 했고 가장 기억남는 투자를 묻자 열살 때 번 돈으로 성경을 산 일이라 했다. 기자는 나도 성경을 샀는데 나는 안 그렇다고 말하자 나는 그 성경을 사고 그 말씀을 믿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식들에게도 예수님보다 더 좋은게 발견된다면 너희 신앙의 위기가 찾아온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만약 너희가 기도보다 더 큰즐거움을 발견한다면 성경보다 더 좋아하는 책을 발견한다면 교회보다 더 좋은 장소를 발견한다면 주님이 베풀어주시는 식탁보다 더 좋은 식탁을 발견한다면 예수님보다 더 좋은 사람을 발견한다면 천국보다 더 좋은 희망을 발견한다면 너희 신앙에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바로 그 때 너희 신앙을 돌아보아야 한다.' 백화점 왕 워너메이커의 말이다.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종교개혁가들의 모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이루시고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확신하며 세상의 어떤 유혹이라도 소망이 없더라도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요셉의 관 정도가 아니라 이 생명의 말씀을 붙잡고 의지하여 살아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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