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알려 하심이라
190811 조원형목사님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 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신명기 8:1~6)
정치인이며 세계인들에게 존경받던 사람들이 많다.
나라가 작아도 통치자의 인격이 전해지는 것은 그 생애가 진실했음을 입증한다. 인도인 마하트마 간디의 이야기이다. 기독교인에 대한 감정은 좋았지만 기독교인의 삶은 살지는 않는다. 그는 어느 곳 어느 처지에 있더라도 진실해야 함이 핵심이었다.
먼저, 사람이 정직해야 한다.
우리가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것은 진실하지 않아서이다. 농사든 장사든 어느 직업이든지간에 정직해야 한다. 정직하면 이익을 보기보다도 손해보고 매장된다. 지금의 사회 현상이다.
어머니가 6살 어린아이를 데리고 놀이공원에 간다. 입장료를 내는데 너는 4살이라 하라 하니 매표원이 물어본다. 이에 사실 6살인데 4살이라 하라 해서 4살입니다 하여 결국 표를 다시 끊었다.
정직을 내 신앙의 철학으로 삼는다는 것이 힘들다. 늘 하나님 앞에서 사람앞에서 정직하지 못함을 회개하면서도 또 반복한다.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듯 연단 과정 성화 과정을 거친다. 예수 믿으면 하루 아침에 천사가 되는게 아니다.방향을 바꾼 것 뿐이다.
한 때 외국인들을 거주하게 했다. 한겨울 기름보일러를 때우는데 3드럼을 채웠다. 이튿날 보일러 가동이 안되어서 살펴보니 하룻밤사이에 없어졌다. 공산 치하에 있었던 사람들의 정황도 있었다. 확인해 보니 우리가 필요해서 가져갔다 한다. 그들의 환경을 이해 못하는게 아니다. 그들의 신조는 사람 앞에서만 정직하면 된다. 신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없는 곳 아무도 안보는 곳에서는 신이 없다
.
예수님이 40일을 주리시고 먹는 것 앞에서 시험당하신다. 배부를 때는 상관없다. 사흘만 굶으면 의지가 무너지고 생각이 바뀐다. 절박한 것이다. 그걸 뿌리치신다. 사람들앞에서 인정받고 과시하고 싶다. 그걸 시험받는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라. 천하만국을 보이며 절하라. 그걸 뿌리치기는 어렵다.
지난 주일 고넬료 이야기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있다 한다. 여러 사람 앞에서는 남을 의식하지만 아무도 없어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있다.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권세 앞에서 살았다. 애굽의 바로왕 앞에서 살았다. 1~5계명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이며 6~10계명은 부모공경, 살인 간음 도둑질 탐내는 것들이다. 이런 계명들은 하나님 앞에서 부모와 다른 사람의 삶도 중요함을 가르친다. 신비주의 철학주의 나무 앞에서 진실히 사는 사람도 많다. 이스라엘 백성은 권세자 앞에서 진실하면 되었다. 노예이다.이런 사람들에게 40년 광야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을 가르친다.
정직에 대한 훈련이 중요하다. 간디의 말이다.
정직한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정직하다 해서 존경받는건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 양심에 걸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정직하면 자신감이 생긴다.
정직하면 책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정직하면 속지 않는다.
정직하면 내적으로 자유롭다.
정직하여서 얻는 보상이다.
인터뷰의 여왕 바브라 월터스의 저서 "인생의 오디션"에서 클린턴 이야기이다.
클린턴이 나이들어 심장 수술 후에 인터뷰를 한다. 클린턴의 말이다. 평소에 감사했어야 했는데... 나를 비난한 사람이 많았는데 죽을 병에 들고보니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다. 평소 감사함을 깨닫고 밉고 분노한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는다. 나처럼 이 두가지 진리를 모두가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클린턴이 말한다. 현재의 진실성을 깨닫는다. 사람이 과정을 거치며 깨닫는다.
살아있음에 하나님 은혜에 주변 모든 사람들, 의인뿐만 아니라 악인까지도 내 존재에 필요한 사람들임을 깨닫는다.
금을 연단하고 은을 연단하듯 대장간에서 칼 호미를 만들 때에도 불 속에 몇번씩이나 넣으며 때려 만든다. 사람 하나 만드는 것도 간단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훈련시키신다. 고난 당하면 왜 괴롭히시나 하고 평안하면 나 잘난 줄 알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40년 광야 생활은 나를 낮추시기 위함이다.
학교에서도 칼 쓰는 법을 가르치기 전에 겸손부터 가르치는 이유이다. 마당 쓸고 물길러 온 후에야 가르친다. 그런데 지금은 글부터 가르친다. 후에는 잘난 척 하여 패가망신한다. 머리에 든건 많은데 권리주장만 한다. 사람 모인 곳에 어디든지 문제다. 교육부재이다. 학력조사하면 거의가 대졸이다.
태풍이 와서 비가 쏟아져야 개천 청소가 된다.
내가 사용한 후에는 깨끗이 정리한다. 겸손 섬김의 훈련이 필요한 이유이다. 엄청난 지식을 가진 이가 술을 먹고는 문제를 일으킨다. 내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사람앞에서 권세앞에서 명예앞에서 남의 권리를 인정한다.
광복 73년이다. 내 나이 46년생이라서 기억이 쉽다. 당시엔 교회에 나와서 주여 여 떼만 쓴다. 그러면 해결된다. 그런 수준이 어린아이 수준이다.
우리나라엔 전쟁기념관이 있지만 워싱턴D/C에는 6.25기념관이 있다. 한 소대가 전시되고 군인들 정치인들이 헌화한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는 글도 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바른 신앙인이 되기까지 40년 광야생활을 통한다. 그 와중에 죽어 장사된 이도 많다. 이 땅 광야같은 세상에서 요단강 건너 여호수아 갈렙처럼 하나님 앞 사람 앞에서 진실된 사람 충성된 사람이 되도록 연단시키시는 것이 오늘의 주제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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