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예배)
믿음과 풍랑
200322 주승중목사님
(마가복음 4:35~41)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각자가 흩어져있는 교회로서 우리가, 가정이 교회로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사를 드리자.
우리는 인생을 항해와 같다고 말한다.
이 세상은 망망대해이고 우리는 일엽편주라 말한다. 苦海와 같은 바다를 항해하는 것은 순풍만으로만 갈 수 없다. 폭풍우를 만나고 암초에 파선하고 짙은 안개에 방향을 잃는다. 우리 인생도 두려움 전쟁 기근 코로나19같은 폭풍우를 만나고 실직 실패 질병 육신의 정욕과 자랑 등의 암초에도 좌초한다. 의심의 구름으로 방향을 잃는다.
갈릴리 바다는 갑작스런 폭풍과 바람으로 큰 파도가 일어난다. 주위의 산과 계곡이 바람통이 되어 순간적 풍랑이 일어난다.
예수님이 그 바다를 건너신다. 피곤하여 배 고물에서 주무시는데 폭풍이 일어나고 제자들이 공포를 느끼며 예수님을 깨운다. 이에 예수님이 일어나 바다와 바람을 잔잔케 하시고 제자들에게 왜 이리도 믿음이 없느냐 말씀하신다.
마가는 믿음이 없다고 한 반면에 누가는 누가복음8:25에서 네희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물으신다. 즉 제자들이 믿음을 잃어버렸다, 믿음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즉 본문의 핵심은 믿음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잃어버리면 안되는 것이 믿음이다. 인생의 폭풍우에서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 믿음이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가는데 폭풍이 일어났다. 위기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에 바람을 꾸짖고 바다더러 잔잔하라 하신다. 그리고 "너희가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라고 헬라어 성경 원문에 나온다. 제자들은 큰 광풍과 파도만 보고 두려움을 느꼈다. 온전한 창조주 하나님이시요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메시야 그리스도이심을 잊었다는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그 예수님을 모시고 가는데 왜 풍랑이 일어났는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데 어찌하여 어려움이 닥치는가.
예수님을 믿으면 만사형통이고 복받고 시련과 고통이 다 사라진다고 생각하지만 오늘 사건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모시고 항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시련을 당한 것이다. 더군다나 이 항해는 제자들이 가자고 나선 항해도 아니었다. 예수님이 가자고 말씀하신 항해였다.
마가복음 8:35에서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말씀하신다. 제자들은 순종하며 따라나섰는데 풍랑이 몰아닥쳤다. 그냥 단순한 풍랑이 아니라 광풍이었다. "메갈레" 즉 메가, 메가톤급 풍랑이란 것이다. 예수님을 따랐는데도 시련이 닥쳤다.
이 문제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도 풍랑이 일어난다.
苦海와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 인생의 항로에도 이해할 수 없는 광풍이 몰아칠 때가 있다. 순풍만 불지 않는다. 폭풍우를 만나고 암초에 파선하고 짙은 안개에 방향을 잃는다. 지금 세계는 코로나 19 바이라스라는 메가톤급 폭풍우를 만나 두려움과 큰 혼란에 빠져있다.
죽거나 죽음의 공포에 떨고 세계적 대공황의 우려에 주가가 폭락한다. 환율은 날마다 폭등하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생업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큰 시련과 고통 가운데 있다. 세계적으로 25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져서 실직의 풍랑에 고통한다. 예수믿는 우리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예수를 믿어도 코로나19에서 예외가 아니다.
상식적인 선에서 조심하지 않으면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다. 우리도 얼마든지 예수님과 함께 함에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함에도 시련과 고통의 풍랑은 찾아온다.
예수님을 잘 믿어도 무서운 병에 걸릴 수 있고 사업에 실패할 수 있고 자녀 문제로 고통을 당할 수도 있도 직장에서 해고될 수도 있고 심지어는 예수믿기 전보다도 더욱 큰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다.
바퀴달린 성악가라 불리는 이남현 성도의 이야기이다.
키181cm, 몸무게 100kgs의 독실하고 건장한 청년으로서 어릴 때부터 찬송부르기를 즐겨했고 예고와 음대 성악을 전공했다. 대학을 다닐 때에는 도밍고라는 별명도 있었다. 2004년 봄에 제대하고 8월에 친구들과 수영장에서 놀다가 잠수하려고 다이빙하는데 순간 번개가 치는듯 빛이 번쩍했다. 물속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수영장 벽면에 부딪힌 것이다. 몸을 움직일 수 없어 물속에 오랜 시간을 잠겼다. 친구들은 그가 잠수를 하는 줄 알았다.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갔고 6시간에 걸쳐 대수술을 했다. 부러진 목뼈 조각 수십개를 제거하고 골반뼈를 목에 이식하는 대수술이었다.
수술후 네모 세상에 갇혔다.
중환자실에서 천정만 보는 것 말고는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주치의는 지금 상태로는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하나님, 왜 하필 접니까." 제가 무슨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왜 제게 이런 큰 비극이 온겁니까. 하나님을 원망한다.
어느 날 TV뉴스가 나온다.
서울 방이동에서 김모씨가 뛰어내려 병원으로 옮겼지만 숨졌다 한다. 자살 소식이다. 그 순간 그가 부럽게 느껴졌다 한다. 자신은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네모 세상에 갇혀서 하나님을 원망했다. 이런 상태로 두시려면 왜 살리셨습니까. 그는 절망 가운데 빠졌다.
주님을 믿고 신앙 생활을 함에도 불구하고 시련과 풍랑이 다가올 수 있다.
더구나 이 항해는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나선 제자들이다. 이 고난과 시련에는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지 않을까. 주님의 의도가 있었다.
예수님을 모시는 제자들처럼 우리들도 갈릴리 바다의 풍랑처럼 苦海와 같은 이 세상에서 다양한 위기의 큰 풍랑을 만난다. 위기에 처할 수 있음을 교훈한다.
여기에 또 한가지 더 중요한 뜻은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내용이 있다.
예수님은 광풍을 꾸짖고 바다를 잔잔케 하시며 확실한 믿음을 갖게 하신다.
마가복음8:33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막았을 때 예수님이 꾸짖었다. 마가복음1:25에서 귀신을 향해 꾸짖었다. 누가복음 4:39에서 베드로의 장모가 걸린 열병에 꾸짖었다. 오늘 본문은 바람을 향해 꾸짖었다 말씀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질병과 자연적 재해에 대해서도 완전한 통제권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한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은 누구신가를 본다. 창조주 하나님의 권세를 본다.
요한복음1:3에서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욥의 고백처럼(9:8) 하늘을 펴시며 바다 물결을 밟으시는 분이시다.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 삶의 풍랑과 역경속에서도 창조주 하나님만을 믿고 따르고 동행할 때 이겨낼 수 있다. 우리의 풍랑을 보시고 아시고 응답하신다. 오늘의 복음이다.
사고 이후 이남현 부모는 기도를 계속한다.
하지만 성경읽고 기도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외친다. 절대교회 안간다고 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손을 잡고 말한다.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하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 병원의 교회에 부모가 계속 끌고 간다. 어느 날 그는 찬양을 따라 부른다. 아버지의 말이 떠오른다. 어느 날 병실에서 한 어린 아이와 눈이 마주친다. 어린 아이가 있는 병실로 오라 한다. 그곳에서 어린이 동요가 흐른다. 한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전율이 흐른다. 아이들의 노래를 부르자 결심한다.
하지만 주치의는 폐활량이 일반인의 20%수준이라 한다.
척추신경 손상으로 복식호흡도 할 수 없다 한다. 성악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2007년에 복학하여 1년 넘게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반복한다. 한곡을 전곡 부를 수도 없다. 2년이 지난 어느 날 가곡 "청산에 살리라"를 한번에 1절 전곡을 부른다.
그의 무대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2011년 9월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에서 금난새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와 협연까지 했고 경희대에서 박사 학위를 마치고 여러 무대에서 노래한다.
그는 고백한다.
"하나님은 내게 모든 것을 빼앗아가신게 아니었습니다. 내가 붙잡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게 하신 다음 더 많은 것들로 채워주셨습니다." 풍부한 성량이나 화려한 테크닉은 보여줄 수 없지만 전하고 싶은 것은 사랑이며 감사라 한다.
"이제는 어떤 상황속에서도 감사가 먼저 흘러나옵니다. 참 신기하면서도 이 또한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모든 것 감사합니다."
우리가 어떤 풍랑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극복할 수 있다. 폭풍우 속에서도 우뚝 설 수 있다.
아프리카 격언이 있다.
"인생은 세가지 중에 하나다.
폭풍을 앞두고 있거나
폭풍 속에 있거나
이제막 폭풍 속에서 나왔거나."
폭풍없는 인생이 없다.
우리 인생에는 항상 폭풍이 있다.
고난과 시련의 풍랑을 우리가 다 막을 수는 없지만 극복할 수 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봄으로서 예수님과 동행하며 사는 것이다. 그리하면 예수님은 잔잔하라 말씀하실 것이다. 임마누엘 하나님의 능력의 손을 붙잡고 담대하게 걸아나가자.
그리하면 우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실 것이다.
시편121편의 말씀처럼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영원까지 지키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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