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여명의 형제들중에서 S기오빠는 교통사고로 돌아가고 M기오빠는 자살했는데 그러한 사건사고 말고도 병사로, 자연사로 인해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서 이젠 몇명 남지 않았다는 안식구의 골육친척 사촌형제들 얘깁니다.
2살 위 S자언니는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수시로 변하여 근황도 짐작하고 잘 지내시는가 했더니 한동안 프로필 변화가 없어서 무슨 일이 있나 하였더니 와병중에 한달반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갔다는 말도 합니다. 평소 건강하여 자신보다도 오래살 것 같더니 사람일이란게 알 수 없다는거지요.
인생무상을 말하고자 함은 아닙니다. 장망성에서 나와서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로서의 천로역정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내 자신이 월성 이씨로서 양반도 상놈도 아닌 신라 왕족으로서 적국이었던 백제의 수도 부여를 찾았습니다.
백제는 수도를 3번 옮겼는데 초기(3세기 중엽~475)의 수도인 한성 즉 위례성(경기도 광주시 경안 부근), 웅진시대(475~538)인 웅진(지금의 공주), 그리고 사비시대(538~660)의 사비(지금의 부여)로 나누는데 660년에 신라와 당의 연합군에 의하여 망하였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하여 다시금 배웁니다.
신라의 수도가 월성(月城) 즉 지금의 경주로서 영남의 수학여행지로 많이 찾아보았으나 백제는 호남지역으로 기억하며 그 수도가 충남 부여에 있었음을 새롭게 알아냅니다만 안식구가 중학시절 부여 여행을 한 기억이 있으나 전혀 지금은 새롭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내 자신도 처음입니다.
(蛇足입니다만...경주 첨성대 앞쪽의 약2000평되는 둔덕윗편이 조상의 터전이었던 월성입니다. 현재로서는 겨울에 강위에서 얼음을 채취하여 보관했던 흙빙고만이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가 보이고 백제문화제재단이 있고 소품창고가 보이는 740호입니다.
바로 길건너편에는 롯데아울렛이 있네요.
숙소 738호 다음으로 739호가 없이 곧바로 740호로서 가장 큰방이라는데 옆방보다는 방 하나는 더 있어 보입니다.
숙소내에 관광 안내 테블릿PC도 비치되어 있는데 돌아보는데만 이틀정도가 걸릴 듯 체험하려면 더욱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바리바리 싸간 음식으로 장소와 숯불을 빌리는데 5만원, 일회용 접시와 넵킨 등의 필요한 소모품을 쓰는데 3만원이라는 정경 마당은 밤9시까지 운영하는데 놀이터가 있어서 미취학아동인 손주들 놀기에 딱맞더군요.
들어올 수 있는 통로가 비상하여 리조트내의 식당 내부를 통하여 들어오며 외부인들이 접근하기 힘든 곳입니다.
어딜 가더라도 백제금동대향로의 그림과 문양이 게시되어 있습니다.
야간에도 개장한다는 백제문화단지가 밤에는 음산한 음악을 틀어놓습니다.
백제 멸망당시의 한을 그린 귀신체험 프로그램 때문인 듯 합니다.
불빛조명 장난감도 구입했습니다만 음산한 음악에 귀를 막으며 무서워하는 5살 손주의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고 귀가합니다.
하면서도 무서워하는 둘째를 안고 왕좌에 앉아봅니다. 원래 왕의 자리는 외롭고 두려운 법입니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백제문화단지 내에 사비성과 위례성은 결국 문화단지 이름그대로 모두를 꾸며놓은 곳이고 제향루는 전망대, 능사는 고분 능을 지키는 절을 뜻합니다.
숙소 옆의 백제문화제 소품창고가 대나무 숲과 함께 고즈녁하게 있고 이 길을 통하여서도 정경마당으로 들어갈 수 있어보입니다. 결국 리조트 뒷편 고즈녁한 곳입니다.
버찌는 새까맣게 익어 떨어지기 시작하네요.
수륙양용버스로 60분 걸린다는 시티투어는 약90분의 행사임을 설명하는데 할인전의 성인1인당 3만원입니다.
차라리 구드래선착장에서 1인당 7천원한다는 황포돛배 체험이 나을 듯 한데 5살 손주에게는 그 반값을 받네요.
선착장에는 백마강의 눈치들이 다 모인 듯 한데 사람이 먹는 강냉이 한봉지가 2천원입니다.
갯벌의 풀게를 예상했던 5살은 강냉이로 물고기에게 밥을 주면서 기분이 풀립니다.
백마강 물위에 떠있는 노란 상자는 수륙양용버스입니다.
정박시킬 밧줄을 준비하는 선원 할아버지에게도 관심을 가지는 5살입니다. 호기심이 많은 나이입니다.
낙화암에 도착하여 정박할 준비를 하는거지요.
5살과 선원 할아버지 사이의 절벽 붉은 글씨 3개는 "낙화암"의 한자어입니다.
결국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고 할아버지와 대화도 뭐라뭐라 나눕니다.
그러고보니 도착한 곳이 고란사 입구인데 이곳에서도 눈치가 바글거립니다. 당연히 강냉이를 또 사야지요.
부소산성 매표소이지만 정작 표를 구입한 부소산성은 가보질 못하고 천년사찰이라는 고란사와 낙화암을 돌아보는 일정입니다.
이곳에서는 체온 측정을 하며 동시에 소독액이 품어져 나옵니다.
차라리 금액을 공시해 놓은 것이 부담을 드는 듯 합니다. 초파일 연등 하나 놓고 기천만원을 쓰는 불신도도 보았거든요.
고란사 사찰 2~30평되어보이는 좁은 마당에서 황포돛배 선착장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5살입니다.
숙소에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청소하시는 여인분들에게 "안녕하세요" 말 한마디 인사하고는 식수와 타올, 행주 등의 소모품을 추가로 더 받은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여인들이 까르르 웃으며 "안녕하세요" 흉내를 내더군요.
옛날 할아버지가 약수물을 너무 많이 마셔서 결국 어린애가 되어 할머니에게 엉덩이를 맞고 기저귀를 찼다는 고란사 약수터 이야기를 황포돛배에서 스피커로 알리는 바람에 엄마가 어려지면 안된다고 마시지 말라는 7살입니다만 그만큼 건강해진다는 뜻이라고 설명해줍니다. 아직은 말하면 그대로 믿는 7살입니다.
천원짜리 지폐로 묶어 소원을 빌어놓는 곳도 있네요.
불상을 놓은 내부의 모습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걸 보고는 예쁜 연등초를 갖다놓은 7살입니다. 소원을 빌라 하니 할머니가 죽지 말라고 하네요.
옆편의 타종 소리가 은은하게 들립니다만 종소리가 나는 이유를 알아보려고 7살, 5살 모두 종을 치며 유심히 살핍니다. 종을 치는데도 헌금함이 있습니다.
5살도 가만 있을 순 없습니다. 파란색 연등초를 무조건 들고 나오네요. 무인판매대입니다.
고란사를 뒤로 하고 낙화암으로 향합니다만 200m윗쪽이라서 잠깐이면 오릅니다.
낙화암 바로 윗쪽의 정자 백화정입니다.
백화정 아래 낙화암을 보려 내려갔으나 낙화암이 보이질 않는데 이곳에서 사람이 떨어졌다고 하니 7살은 "피가 많이 났겠다"고 대답합니다. 먼저 바위에 부딪히며 백마강으로는 떨어질 수 없는 구조입니다.
낙화암에서 백화정으로 발길을 옮기는 좁은 길도 재미있습니다.
고란사에서 다시 출발지인 구드래선착장으로 향하려는 찰나 시동이 꺼집니다.
배가 선착장에서 떠나서 묶이지 않았는데도 떠내려가는 움직임이 거의 없을 정도로 백마강 물살은 거의 없어보입니다.
미리 말했었는데 기름이 없어서 시동이 꺼진 듯하다는 선장의 말이 서글퍼보입니다만...
다른 배가 와서 강위에서 서로 선박을 묶어 승객들이 옮겨탔는데 고장난 배를 묶어 같이 끌고가는 도중에 고장난 배는 왜 끌고 가느냐고 색안경쓴 어느 승객의 항변도 듣습니다. 젊은 여인 둘을 대동한 40대 정도의 호기로운 젊은이가 웃겨보입니다만 나같아도 끌고가겠다면서 고장난 배를 강위에 그냥 놔두냐는 여식의 말도 듣습니다.
여튼간에 황포돛배 엔진 소리에 모든 소리가 파묻힙니다만 동남아 필리핀에서 겪은 일을 일이년만에 이곳에서 다시 겪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모든게 재미있어 보이는 관광입니다.
구드래 선착장에서 뽕 열매가 익어가는 것도 봅니다만 선창장 바로 윗쪽의 장원 막국수가 그렇게 유명하다더니 긴줄에 포기하고 맙니다.
숙소 안의 워터파크 입장료도 별도입니다.
워트파크에서 노는 동안에 안식구와 단둘이 궁남지를 찾았습니다.
사진 한장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넓은 연꽃밭이지만 연꽃은 별로 없네요. 아직은 이른 듯 합니다.
보이는 붓꽃 비스무리한데 키가 큰 것은 창포라네요. 옛날 이 기름으로 머리를 감았다는 그 창포입니다.
숙소 내의 워트파크가 18시까지인지라 궁남지를 뒤로 하고 부여시장을 찾았는데 한산합니다.
차라리 부여 터미널 옆의 중앙시장으로 가보라는 말도 듣습니다만 이곳 부여시장은 5일장이랍니다.
5,10단위인데 말일인 30일은 31일이 있으면 31일날로 대체되어 내일에야 장이 선다네요.
역병을 핑게로 주일을 범한 내 처사가 이렇습니다.
차라리 어제 야간개장때 돌아보지 못했던 문화단지를 다시 들렀습니다.
아이들에겐 야간보다는 낮에 보는게 낫습니다. 전기인력거와 여러명을 태우는 전기자전거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아이들 눈에 즐거운 흑염소, 오리, 닭 등의 동물들도 윗편에 있습니다.
전망대 산등성이에 핀 노란 꽃은 구절초라는 팻말도 봅니다.
뒤에 보이는 것이 백제 최초의 수도 한성인 위례성입니다.
경기도 광주시 경안 부근의 위례성을 이곳에 옮겨놓았는데 토성(土城)에 목재 구조의 초가집 정문이 이채롭습니다.
정문 성루에 올라 성문 밖을 내다보는 모습입니다.
흙으로 쌓은 토성이지요.
하면서도 불화살 한방이면 성루가 불타는 구조입니다만 기원전 일이니 옛날 사람이 무식해서인가요.
시대 상황상 과학이 발달되지 않아서이고.....우리가 더 나은 삶과 지혜를 위해 공부해야 할 이유가 됩니다.
위례성 성문앞을 제외한 3면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위례성 안쪽의 초가움막에 기거하려면 겨울엔 무척 추웠을거란 생각도 듭니다만...
입장료도 돈이고, 움직일 때마다 돈인데 야간개장과 낮 개장을 연거푸 입장한 것은 솔직히 말하면 파전과 막걸리 때문입니다.
입장권과 파전 막걸리 구입권2장을 숙소에서 받았거든요. 주막은 저녁8시까지인데 막걸리 파전 구입권 한장은 내일 써먹으려 하였는데 월요일은 휴장이라니요. 내 처사가 좀...그렇습니다만 파전이 오징어가 많이 들었고 맛은 있는데 기름이 좀 많네요. 내가 표 한장을 사용 못하게 되었으니 보는 흉입니다.
소망의 종을 구입하여 집에 가져가려 하였으나 기계도 다른건 되는데 종 구입만 안됩니다.
이곳에서도 젊은 데이트족이 큰북을 치는데 헌금통이 있고 소원을 비는거라네요. 부자가 되게 해달라는 청년의 큰소리에 아가씨가 웃는게 들려서 하는 소립니다.
모두를 뒤로 하고 나혼자 귀갓길 직전에 저녁을 먹는데 갈비 스테이크에 코다리찜이 나온게 이채롭습니다.
된장 하나에도 보리알 비스무리한게 동글동글 섞여있음도 보입니다.
귀갓길에 유명하다는 옛날시장 통닭은 주문하고 20분을 기다려야 한다던데 더욱 시간을 지체하여 줄선이들보다도 먼저 받았다는 말을 들으며 나 홀로 귀가를 서두릅니다. 내일 출근 때문이지요. 군데군데 벼락과 폭우가 오는 길을 2시간반만에 귀가했습니다.
다음인 오늘에야 귀갓길이 똑같이 2시간반이 걸렸다면서 보내온 여러 사진들을 받아봅니다.
가족들로부터 행복과 호강을 대접받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낙화암이 있는 백마강의 자연산 눈치들이 강냉이를 먹기 위해서 선착장에 모여들고 귀갓길에 부여 읍내를 가로지르며 금강 다리를 건넜었는데 백마강과 금강을 동시에 품은 부여가 풍요로운 땅임을 짐작합니다.
추이 : 수정합니다. 백마강(白馬江) 또는 백강(白江)은 충청남도 부여군을 지나는 금강(錦江)의 하류 구간을 부르는 이름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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