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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유튜브 자료(잘잘법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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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30 학생들을 교육하시는 선생님들께 당부드립니다 (이재철목사) 학생들을 교육하시는 선생님들께 당부드립니다. 왜 우리의 가르침이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 온전한 배움이 없다면 진정한 가르침 또한 없습니다. 가르침의 이유와 목적, 가르침의 본질은 오직 예수님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생명의 지혜입니다. 우리의 다름 세대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이아닌 그 생명의 지혜입니다.
200628 목회자, 교사, 그리고 부모에게 당부드립니다 (이재철목사) 목회자, 교사, 그리고 부모에게 당부드립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그렇게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기독교 학교에서 교목으로 섬기며 학생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교사는 믿음의 행함이 있는 교사입니다. 대단한 스팩을 가진 그 어떤 교사라도 입에 아무리 예수님의 말씀을 담고 사는 목회자라도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며 아이들이 보고 듣고 배울 수 있는 삶을 제공하지 못하는 교사는 결국 한 영혼의 삶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없는 비참한 존재가 됩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그렇게 방관하고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강단 위에 내가 전하는 말씀보다 그 말씀 뒤에 있는 내 삶이 더 먼저라는 것을, 가정에서 올바를 가르침을 하는 말보다 부모로서 먼저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 먼저..
200628 최고의 유산, 유일한 유산 (이재철 목사) 최고의 유산, 유일한 유산 사랑하는자녀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수 있는가? 어제 8명의 졸업생을 파송하는 졸업파송예배를 드렸습니다. 졸업파송예배에서 부모님은 기도하다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졸업생은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눈물을 쏟았습니다. 또 어떤 졸업생은 기도하며 돌아본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뜨거운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넘치는 자리, 눈물이 넘치는 자리, 감사가 넘치는 그 자리에서도 우리의 눈물 한계는 보입니다. 아무리 내가 울어줄 수 있다 하여도 결국 인생은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00628 삶의 모든 영역에서 .... 평신도의 성경공부법 (청파교회 김기석목사) 삶의 모든 영역에서 기독교적으로 살기 위한 평신도의 성경 공부법 성경을 바로 알기 원해요 하나님 뜻에 맞는 삶을 살고 싶거든요 평신도는 성경을 어떻게 읽고 공부해야 하나요?
200628 흔들리지 않는 인생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이재철목사) 가장 비참한 인생은 비교하는 인생입니다. 모든 인생에 비교하며 상대적인 삶을 살아간다면 그 어떤 희망과 기쁨도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인생은 자족하는 인생입니다. 만족하는 인생입니다. 비교하는 삶이 아닌 절대적인 가치로 인해 그 가치로부터 누리는 만족과 기쁨과 평안을 누리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세상은 늘 상대적입니다. 그래서 많은 것을 가져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더 많이 가진 누군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은 언제나 절대적인 샬롬을 우리에게 허락하십니다. 상대적 빈곤을 떠나 십자가로 인하여 절대적 자족의 삶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200627 왜 그리스도인의 삶이 유리상자와 같아야 합니까 (이재철 목사) 왜 그리스도의 삶이 유리상자와 같아야 합니까? 왜 세상은 우리라는 화면을 통해 예수님을 바라볼까요? 그리스도의 삶은 유리상자와 같아야 합니다. 특별히 목회자의 삶은 그것이 매우 거북스럽고 불편한 일이라 하더라도 유리상자와 같이 그 속을 내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상자 안에 있는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보일 때 지탄과 조롱 또한 감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지탄과 조롱으로부터 조금이라도 자유하고자 늘 삶을 점검하고 살아야 하는 숙명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바로 목회자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장 궁극적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살아가셨기 때문이며 그것이 유일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늘 예수 닮기를 소망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우리라는 화면을 통해 우리라는 유리상자를 통해 우리 안에 ..
200626 믿음에 대한 명쾌한 정리 (이재철목사님) 믿음에 대한 명쾌한 정리
200626 믿음있는 척하지 마세요.하나님은 아세요 (유찬호목사) 영혼없이 하나님을 대하면서도 따뜻한 관계를 유지한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사람은 말로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복음은 말로 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말은 우리 마음에서 나오지만 인간의 죄는 마음의 생각과 말을 다르게 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속일 수 있습니다. 따뜻하고 위로하는 말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신앙 생활에도 그런 이중적인 모습들이 종종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그냥 말입니다. 주님 의지합니다. 그저 말입니다. 주님 신뢰합니다. 그저 말입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은 말에 속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중심을 송곳같이 지켜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고백은 무..